
한국에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특별한 기념일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업체들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적인 행사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흥미로운 역사와 시대적 배경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익숙하게 챙기는대표적인 날인 빼빼로데이, 블랙데이,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를 살펴보고,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념일들을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삼겹살데이
3월 3일 바로 삼겹살데이입니다. 숫자 ‘3’이 두 번 겹치는 날이라 삼겹살을 먹는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했지만, 그 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2003년, 경기도 파주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던 자리에서 한 학생이 “숫자가 3월 3일이라 삼겹살데이로 하면 재미있겠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면서, 이 이야기가 지역 축협 조합원에게 전해졌고, 결국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까지 이어지며 공식적인 삼겹살데이로 지정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삽겹살데이가 만들어진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확산하면서 돼지고기 소비가 급감했습니다. 특히 제주 지역은 1년에 약 1,800톤의 돼지고기를 수출하지 못해 큰 피해를 보았고, 국내 양돈농가 역시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파주·연천 축협이 돼지고기 소비 촉진 운동의 하나로 ‘3월 3일 삼겹살데이’를 제안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방송사들이 이 행사를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는 행사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게 삼겹살데이는 숫자 ‘3’의 재미와 농가를 살리려는 진심이 결합한 국민 축제가 되었습니다.
빼빼로데이
매년 11월 11일, 한국의 거리에는 달콤한 초콜릿 향이 퍼집니다. 평소 좋아하던 사람에게 빼빼로를 건네며 고백하거나, 친구끼리 “더 친해지자”라는 의미로 주고받는 날, 바로 빼빼로데이입니다.
빼빼로는 1983년 롯데제과에서 처음 출시된 막대형 초콜릿 과자로, 일본의 ‘포키(Pocky)’에서 영감받아 만들어졌습니다. 포키는 이보다 17년 전 만들어졌습니다. 에지카 글리코에서 만든 제품으로 오사카의 꼬치 요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끝부분만 초콜릿을 바르지 않아 손에 묻지 않게 만든 제품입니다. 하지만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가 된 유래는 부산 여학생들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 부산의 여중·여고생들이 11월 11일에 “빼빼로처럼 날씬해지자”라는 의미로 친구끼리 과자를 주고받았고 롯데제과가 이를 알고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작하면서 빼빼로데이는 순식간에 국민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언론과 방송에서도 다루며 ‘사랑과 우정의 날’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은 친구, 연인, 직장 동료들까지 서로 마음을 나누는 한국만의 특별한 날로 남아 있습니다. 연인들만 아니라 주위에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마음과 함께 빼빼로를 선물해 보시기 바랍니다.
블랙데이
4월 14일은 솔로들의 날, 블랙데이입니다. 2월의 발렌타인데이, 3월의 화이트데이에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받은 연인들과 달리, 이날은 연인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검은색 음식을 함께 먹으며 웃는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블랙데이의 이름은 ‘화이트데이(3월 14일)’의 반대 개념에서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고받지 못한 사람들이 4월 14일에 모여 자장면을 함께 먹으며 위로를 나누자는 의미에서 생겨났습니다. 검은색 소스를 사용하는 짜장면은 블랙데이의 상징이 되었고, 이날 커피나 초콜릿 등 검정색 음식의 매출이 오르는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최근에는 나는 솔로라는 데이팅 프로그램에서도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설에서는 ‘4월(4)’이 두 번 반복된다는 점과, ‘블랙’이 불길한 색이라는 점을 엮어 만든 기념일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블랙데이는 단순히 외로운 날이 아니라, 혼자여도 괜찮고, 자신을 위해 즐길 수 있는 유쾌한 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국 대학가나 직장 식당에서도 이날 자장면을 점심 메뉴로 내놓는 풍경이 흔합니다.
발렌타인데이
발렌타인데이는 2월 14일,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기원은 연인의 축제가 아니라 기독교 순교자의 날이었습니다.
발렌타인데이는 로마 제국 시대, 박해받던 기독교인을 도운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순교한 뒤, 496년 교황 젤라시우스 1세가 2월 14일을 그의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다만 ‘발렌티누스가 감옥에서 사랑의 편지를 남겼다’는 이야기는 전설일 뿐, 역사적 증거는 없습니다.
이후 중세 유럽에서는 2월 14일을 ‘새들이 짝을 짓는 날’로 여기며 연인들의 날로 발전했습니다. 시인 제프리 초서가 리처드 2세의 약혼을 축하하며 “2월 14일은 사랑하는 새들이 짝을 고르는 날”이라고 노래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초콜릿을 선물하는 전통은 19세기 영국 초콜릿 회사 ‘캐드버리(Cadbury)’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60년대 하트 모양의 초콜릿 상자를 판매하며 ‘사랑의 상징’으로 마케팅했고, 이후 꽃·카드와 함께 초콜릿이 발렌타인데이의 대표 선물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950년대 초콜릿 회사의 마케팅을 통해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문화”가 퍼졌고, 한국에서도 이 관습이 정착하면서 지금의 발렌타인데이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발렌타인데이는 순교자의 날에서 사랑의 축제로, 그리고 사랑을 표현하는 세계적인 문화로 발전했습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기념일들
- 1월 14일 다이어리데이 – 새해를 맞아 연인끼리 다이어리를 주고받으며 새해 계획을 세우는 날.
- 5월 14일 로즈데이 – 장미와 함께 사랑을 표현하는 날.
- 6월 14일 키스데이 – 키스로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
- 7월 14일 실버데이 – 은반지나 은 액세서리를 선물하는 날.
- 9월 14일 포토데이 –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는 날.
- 10월 14일 와인데이 – 와인 한잔과 함께 낭만을 즐기는 날.
- 11월 11일 빼빼로데이 – 초콜릿 과자를 주고받으며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날.
- 12월 14일 허그데이 – 따뜻한 포옹으로 마음을 전하는 날.
이렇게 보면 특히 14일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 코드로, 사랑과 관계를 이어주는 상징적 날짜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상술로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를 챙기는 문화가 있다는 건 꽤 멋진 일 아닐까요?
맺음말
우리가 챙기는 기념일들은 단순히 상업용 이벤트로 보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적 수단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삼겹살데이의 짭조름한 구이 냄새, 빼빼로데이의 달콤함, 블랙데이의 유쾌한 위로, 발렌타인데이의 따뜻한 사랑처럼, 각 날에는 시대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상업 행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한 번쯤은 누군가를 위해 혹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날로 여겨보는 것은 어떨까요?